요한복음 20:24-29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부활의 아침에 무덤으로부터 살아나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그 분은 죄와 사망의 감옥에 갇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능력으로 그를 살리셔서 만유의 주님으로 드러내시고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안식일을 지낸 주일 아침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번개처럼 내려왔습니다. 그의 능력에,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도망갔습니다. 천사는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렸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저는 이 광경이 상상하면 재미있습니다. 성경에 천사가 앉아 있는 모습은 유일합니다. 아마도 여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을텐데, 앉아서 기다리자 하는 것 같아서 왠지 유쾌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모든 복음서에서 알려 주듯이 여인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당시 풍습대로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빨리 가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염려는, 돌을 어떻게 옮길까였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 돌은 이미 굴러져 있고, 지키던 군인들은 안 보이고, 천사가 있습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놀라운 말을 듣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정말로 예수님은 안 계시고 세마포만 개어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깜짝 놀라 달려서 내려왔고,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들은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더이상 우리와 같은 육체가 아니라 신령한 몸,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른 알아보지 못했고, 문이 잠겨 있어도 쓱 들어오십니다.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면서, 정말로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 자리에 10명의 제자들이 있었고, 어쩐 일로 도마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가서 그 놀라운 소식을 말합니다. 주님이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우리와 대화하셨다고 말하는데 도마는 믿지 않습니다. 10명이나 같은 말을 하면 믿을 법도 한데, 도마는 자기 눈과 귀로 보고 듣지 않으면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보고 의심한다고 부정적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전쟁에 나가는 왕이 먼저 계산한다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계산해 보고 전쟁에 승리할 것인지 미리 판단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려는 사람은 그 전에 내가 정말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으로 모시는 결정은 영생을 거는 모험인데,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나 자신의 인격적인 확신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8일 후에 모두에게 다시 나타나시는데, 이번에는 도마도 있었습니다.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손가락을 못자국에, 손을 창자국에 넣어보라 하십니다. 그의 옆구리에 난 창자국은 어른의 손이 들어갈 수 있을만큼 크고 깊습니다. 그 상처만으로도 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도마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들으니, 더이상 확실할 수 없습니다.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셔서 오신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십니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면 아무리 잘 해도 기독교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도마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놀라운 기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의 신성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언자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셨다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훌륭한 고백이 됩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나 논리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를 주셔서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4 에는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번역에는 지명되셨다는 번역이 있는데 (appoint) 그것은 그 때 임명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성이 부활로 인해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그 분이 의학적으로 사망 상태에서 소생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세상에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총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분의 부활을 목격하면서 외치듯 고백하는 도마의 말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불과 며칠 전에 십자가를 지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짐을 지고 불의한 형벌을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를 당하신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만나셨지만, 그들에게 거부당하고 정죄되어서 사형판결을 당하신 분이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얼마나 큰 죄악 가운데 있는가를 명백히 드러냅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폭력을 휘두른 로마제국, 그들과 협력한 유대교 지도자들, 그 분을 버리고 부인한 제자들, 멀리서 눈물만 흘릴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힘없는 백성들 모두가 죄인입니다.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로마제국은 그 당시 2대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하에서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로마의 영광을 부러워하고, 로마가 주는 안정과 풍요를 받아 누리기 원했습니다. 그 전에는 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지중해 세계에 승리와 평화를 가져다준 로마 황제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피지배민족을 군대와 무력으로 억압하고 십자가로 처형하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지탱되는 평화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마의 번영을 위해 그 작은 민족과 그들의 하나님이 당하는 폭력은 문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최고의 문명 생활을 하는 로마인들에게 이러한 어두운 죄악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렇게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지배하는 로마인이나, 지배당하는 유대인이나, 그 가운데 이득을 취하는 계층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이렇게 악한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곧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제는 심판과 형벌의 시간이 너희에게 닥쳤다고 선언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할 시간도 주시지 않고서,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인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불안해 하는 제자들을 즉시 안심시키시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심판이 아니라 화해를, 치유를, 구원을 가져다 주는 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온 세상이 힘을 합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이 세상을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버렸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안심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정말로 좋은 소식인 복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본능적으로 나의 행동, 생각, 말 등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꾸 생각해야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의 생각과 언행에서 나의 죄의 근원을 찾으려면, 아무리 회개해도 부족합니다. 이만하면 나는 충분히 회개했어, 이제 죄가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나의 언행과 생각을 문제삼는 것보다 훨씬 중대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로마인들처럼,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든, 대부분의 로마인들처럼 소극적으로 침묵하고 세상이 주는 풍요를 더 좋아했든, 우리는 다 예수님을 죽인 죄인들입니다. 이 죄성은 인간이 아무리 해도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도 자신이 이만큼 엄청난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영리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못합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느날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죄인이더라,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양심적이고 종교적이라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게 할 만큼 엄청난 죄인이라는 것을 자기 힘으로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조금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고민하니까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는 것,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도마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죽었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었어 라고 절망할 시간도 주시지 않고서, 예수님은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이미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이미 죄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서 돌아보니, 과거의 나는 그만큼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큰일날뻔 했구나,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은혜를 받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는 있어도, 내가 그렇게 큰 죄인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지옥에 가겠구나 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용서받기 위해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된 순서는 반대입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인간적인 율법으로 나의 허물들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핏값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합니다. 복음이 없을 때 이 세상에는 지혜롭고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면, 거룩한 자가 최악의 죄인이고, 지혜자가 가장 큰 바보이며, 정직한 자가 가장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나를 구원하소서 라는 기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대해 대충 알 수는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고,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개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자신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자기가 충분히 용서받았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죄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모르면, 그런 죄의식 자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면, 그는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자비롭고 평화의 인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자기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방금 드린 말씀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거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죄의식이 따라옵니다. 은혜가 죄의식에 선행합니다. 그러나 그 죄의식은 나를 지옥의 절망과 공포 속에 내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과거가 되어 버린, 이미 소멸된 죄의식입니다.이 복음을 아는 사람은 그러므로, 죄로 인해 괴로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감격만이 남은 사람입니다.
이 시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고백이 있습니까?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나에게 주시는 다정한 평안과 은혜의 음성을 듣습니까? 그것을 통해 그 분이 진정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까? 그리고 비로소,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이 나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그러나 그 죄로 인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예수님이 나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고백합니까? 나는 이미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이 고백이 있는 분들은 가장 복된 사람들입니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셔서 나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분을 깊이 생각하시고, 부활하셔서 나에게 오시는 그 분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이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가 행여라도 지옥불을 두려워할까봐 재빨리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와 은혜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분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